그럭저럭

엄마가 잘 사냐고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순간 말문이 막혔다
3초간 당황하다 그럭저럭 산다고 대답했다
날아갈 듯이 기분 좋게 잘 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인생을 살면서 그만큼 좋았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없다'라고 쓰려다 그래도 혹시 있지 않을까 싶어)

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남자 중에서 딴지 김어준 총수는 단연 두드러지는데
요며칠 사이 인터뷰를 여럿 읽다가 이혼한 사실, 동생을 갑자기 잃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총수의 발랄함에 내 안의 골수 페미니스트가 혼절할 때면
저런 남자라면 기꺼이 전업주부가 되어주리라는 헛된 소망도 품는다(물론 상대방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거칠 것 없고 꼬드기지 못할 사람 없을 것 같은 완전한('완벽한'이 아니다) 남자가 겪는 아픔은 낯설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에 이런저런 사실을 아는 것도 괴상하지만

주말마다 부쩍 불량식품을 먹고 시덥잖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죽친다
이젠 속이 받아주질 못해서 프링글스 한 통을 다 못 먹고
잉여짓은 시동도 걸기 전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조금 바뀔 때가 된 것 같은데 무엇을 바꾸어야 할 지 모르겠다

인생을 그럭저럭 살다보면 괄호가 많아진다
복잡하고 귀찮다

by 라임콕 | 2010/05/29 21:14 | 어지러운서랍장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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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그물스타킹 at 2010/05/30 22:25
이 글 공감하고 싶지 않은데 공감되네요. 책 좀 읽어야겠어요. 너무 오래 안 읽었더니 정말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감히 지금이 제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 같아요. 더이상 꿈꾸지 않는 시기.
Commented by 라임콕 at 2010/06/05 23:44
저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랍니다. 인생의 목표가 없어요. 예전에는 목표가 없다는 걸 인식하질 못했다면 지금은 고민만 많아요. 답도 없고 방향도 없는 고민. 시대가 이런가요, 그저 인간은 모두 이런가요. 회사 생활 접고 쉬면서 블로그질할 때 이제 내 인생의 겨울이 지났구나 했는데, 봄 여름 가을 지나서 이제 겨울이 오나 봐요. 힘든 시기도 계절처럼 한철이라고 하면 위로일까요, 계절처럼 결국 다시 돌아올 거라는 체념일까요.
Commented at 2010/06/02 12: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임콕 at 2010/06/06 00:22
결전의 날이 내일인데 저한테는 이미 그그저께가 되었네요. 결전의 날은 잘 보내셨는지, 결과가 어느 쪽이든 결전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죠.(좀 진부한 얘기지만 사는 게 참 그렇게 진부하더라고요.)
풍선 달고 날아가는 마음이라니! 제가 독자 되고 싶네요. 언제나 반듯한 애정을 갖고 싶었어요. 전 언제나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 아 내가 그 사람이랑 더 가까워지고 싶었구나 깨우치느라 스무 박자씩 느려요.

저는 은지원 포스팅하는 발랄한 라임콕이 좋아요. 중2병 걸린 사춘기 흉내내는 음침한 라임콕은 RSS 구독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살살 다독이면서 살려고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사람인데, 내가 아니면 이렇게 까탈스런 나를 누가 데리고 살겠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라서
요즘도 문득 어떤 심정이었을까 떠올리고 또 생각합니다.
김어준 총수의 인터뷰도 그랬지만 요즘 안희정 도지사나 이광재 도지사, 유시민 후보 인터뷰를 읽으면 새삼 참 멋지게 살다간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고요. 세상에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점점 알게 되면서, 서로 참 잘 만났구나 싶어요. 부럽기도 하고요. 사람을 만나는 인연,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나는 그런 사람 만났는지. 참 이러다 언제 총수 같은 남자를 만나 전업 주부의 꿈을 키울지 참 까마득하네요.

공부도 많이 하시고 연애도 열심히 하시고, 무엇보다 포스팅도 쏠쏠히 하세요.
오래 걸려 얼음집 지으신 것처럼 저한테도 시간을 주셔야죠 흐흐
어떤 말을 건낼까 일상 속에서 가끔 생각하겠죠. 부디 제가 음흉함을 발휘할 기회를 주시길.
Commented at 2010/06/16 11: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임콕 at 2010/06/22 21:54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좀 울적한 날이었어요. 우울함을 좀 털어내려고 들어왔다 뵙네요. 그러네요, 결혼 즈음. 아직도 별로 실감나지는 않네요. 원래 저에게 그다지 같은 공간의 인간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스타는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했던가요. dear diary로 시작하는 일기 쓰듯이 그냥 나를 비추어 볼 상대가 필요한 것 뿐일지도 몰라요. 지금은 무심하네요. 다른 사람과 나를 견주어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별을 바라보다 지겨워진 거죠. 내 인생은 내 인생, 이런 것도 있고.

벌써 3년이라니, 참 빠르네요. 그동안 즐거우셨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해요. 좋을 때 좋아하고 잊을 때는 잊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또 다시 돌아보지요. 어디 안 갈 거에요 아마. 저는 오로지 예뻐서 좋았어요. 처음부터 참 예쁘더라고요. 실망한 적이야 셀 수 없죠. 기대가 지나치게 크기도 했어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나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처럼. 점점 할 수 있는 일만큼 할 수 없는 일도 많다는 걸 깨달았고, 내 현실만큼 갑갑한 현실에 지긋지긋했나 봐요. 아 또 답글인 척 일기 쓰고 있네요. 제가 좀 이렇습니다.

많이 덥습니다. 더위를 많이 타기도 하는데 속이 편칠 못해서 더 덥네요. 저는 차라리 장마가 나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은 좀 울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인가 지겹지도 않은지 또 고민하는 밤입니다. 네, 건강해야죠. 몸보다 마음이. 부디 건강하세요.
Commented at 2010/07/14 00: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임콕 at 2010/07/19 21:24
여긴 주말에 비가 쏟아지고 나서 무척 덥습니다. 어제 밤에는 어찌나 끈적이던지 내 몸도 벗어던지고 싶었어요.

종종 들를 때면 너무 늦어서 손가락만 만지작 만지작 그럴 때가 많았어요. 벌써 다녀간 분들 흔적이 많아서 또 그 흔적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일 때가 많아서 사람은 참 다르면서도 또 같구나 그런 생각했어요. 저도 좋아요. 저와 다른 점이 좋고 발가락만큼 닮은 점도 좋아요. 제가 유난히 어려워하는 말을 편안하게 건네시는 건 조금 부럽고요.

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빈 집 같아 보여도 가끔 지쳐 돌아와 마루에 풀썩 누웠다가 갑니다. 닷새만에 답글 쓰려니 꼭 엽서 쓰는 기분이네요. 언젠가는 긴 편지를 쓰고 싶어요.
Commented at 2010/09/13 15: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임콕 at 2010/12/26 12:51
잘 지내시나요? 날짜가 9월이니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100일 기념 답글 쯤 되겠어요. 저런저런. 제가 이렇게 무심합니다. 요즘은 부쩍 무심하게 살고 있어요. 그동안 꽤 번잡하기도 했어요. 원체 단순한 사람이라 생활이 번잡하면 나머지는 모두 잊고 삽니다. 잉여짓할 겨를도 없었다고요 세상에.

저는 인턴 생활 해본 적 없이 바로 직장인이 되어서 인턴과 함께 일해보기만 했네요. 참 예쁘더라고요. 그 속이야 아픈지 썩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참 좋아보였어요. 아 나도 좀 더 어릴 적에 다른 사람이 일하는 걸 가까이에서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고요. 몸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서 이 집에서 이 옷 한번 입어 보고 저 집에서 저 옷 한번 입어보고 할 경황 없이 그냥 먼저 본 옷 아무렇게나 꿰어 입었구나 싶어요. 나한테 안맞는 옷인 지도 미처 몰랐고 불편한 걸 알았을 때는 벌거벗고 서 있을까 두려워서 벗어던질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새로 찾은 옷은 훨씬 편해서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바꾸지 못했나 아쉽기도 하지요. 그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아직 그 분야에서 인턴 생활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랄게요.

세상에 남자는 많아요. 연애 세포 결핍으로 태어난 제가 이런 말하기는 좀 우습지만, 그래도 살면서 아 저 사람 참 좋다 싶은 사람 많아요. 물론 저 사람 참 싫다 싶은 사람도 있지만. 기왕 태어났으니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고백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래야죠. (역시 선천성 연애 세포 결핍 환자가 얘기하는 거니 설득력은 별로...) 얼마 전에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로맹 가리의 지난한 연애 도전사를 읽다보니 역시 나는 연애는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잘난 남자도 사랑을 얻기 위해서 신발도 먹는데 나따위가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다니 양심도 없다 했지요.

우리의 은지원은 올해는 KBS에서 상을 받았더군요. 최고 엔터테이너 상이던가요. 박명수나 은지원이나 노력이나 결과에 비해 평가를 잘 못받는 사람들이라 공동 수상이 참 어울린다 싶었어요. 그 어정쩡한 상 이름도 그렇고. 내가 일하면서 겪는 사회나 그들이 일하면서 겪는 사회가 결국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기도 하고요.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언제나 바른 자세로 싹싹하게 일하는 사람이 더 눈에 띄고 예뻐 보이겠죠. 아 연말 시상식이라니 또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가네요.

요즘은 오래된 꿈을 다시 꾸고 있습니다. 조금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요. 고양이를 품고 있는 것처럼 조금 간지럽고 키득키득 우습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죽기 전에 이루겠다는 다짐도 새롭네요. 오늘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는데 꿈도 없이 살면 너무 서운하잖아요.

겨울이라 건조하니 빨래가 참 잘 마르네요. 이번 주말에만 세 번째로 세탁기를 돌립니다. 오래 미뤄둔 이불 빨래를 하니 속이 시원하네요. 추운 날 집안에서 꼼짝않는 즐거움 누리고 있으니 세상을 가진 것 같아요. 올해 그리고 내년 모두 즐거운 날들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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